봄 난초
Type88
......
아...!
아, 안 돼...!
......
88식 씨?
......
88식 씨, 안에 있나요?
들어가도 될까요?
......
덜컥.
......
찾았다!
으으...
왜 이렇게 빨리 들킨 거지... 분명 깊숙이 숨었는데...
설마 그런 데에 숨어 있었을 줄은 몰랐지만... 레옹이 옷장 바로 앞에 있길래요.
그런데 왜 옷장 속에서 뭐 하고 계세요?
......
...안에 찾는 물건이 있어서요.
그래도 아예 옷장 안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나요...?
정말이에요, 물건을 찾고 있었다고요!
그런데... 대장님이야말로, 제 작업실에는 무슨 일이세요? 제게 수리를 맡길 물건이라도 있는 건가요?
수리요?
88식 씨, 설날에는 모두 함께 모여서 지내자고 했잖아요.
약속 시간이 됐는데도 안 보이길래, 부르러 온 거예요.
......
싫어요....
네?
싫어요..,
전 가기 싫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모두 여태까지 임무 때문에 바빠서, 신입사원인 88식 씨랑 어울릴 시간도 없었잖아요...
모처럼 좋은 기회니, 동료들과 친해져야죠!
하지만 지금 밖은 너무 무서운걸요!
모두 모습이 확 달라졌고, 본 적 없는 물건을 들고 다니는 데다, 새 옷까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밖에 나갔다간, 분명 웃음거리가 되고 말 거예요...
아무도 웃지 않아요! 그리고 88식 씨도 지금 새 옷으로 갈아입었잖아요?
모두 예쁘게 차려입는 것도 명절을 즐기는 한가지 방법이에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
88식은 옷장 속으로 더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모두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라니... 도저히 못 하겠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을 주문할걸... 그냥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 검색해서 대충 고르는 건데...
아아, 왜 미리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그 옷, 주문한 게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직접 만든 거예요?
앗...
네... 새로운 외장 부품과 비밀장치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정말 대단해요!
세상에 둘도 없는 옷이란 뜻이잖아요! 주문품보다 훨씬 값진 거예요!
그럴 리가요!
이건 그냥 제가 마음에 들어서 디자인한 거라고요...
그렇다면 별 문제 없잖아요.
엄청 문제예요!
......
88식 씨, 혹시 그 옷이 마음에 안 드나요?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그저... 직접 옷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제 취향은 다른 사람들과는 많이 달라서...
그래도 이렇게 완성했잖아요?
다 만들었을 때 분명 엄청 기뻤을 거 아니에요.
만드는 동안엔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옷은 완성되어 있었고요...
으으, 전통적인 요소를 좀 줄일 걸 그랬어...
줄일 필요가 어디 있어요?
줄이면 오히려 명절 느낌이 안 나잖아요. 전통 요소를 남긴 건 옳은 선택이에요.
하지만 책에서도 오래된 디자인은 철 지난 거라 하던걸요...
낡고 촌스러운 건 버리고 새로운 트렌드에 맞춰야 정상일 텐데...
저는 지금 이런 게 보기 좋게 느껴지는데, 그렇다면 책이 틀렸다는 뜻이잖아요!
잠깐만요. 책이라니, 무슨 책이요?
M99가 작업대 쪽으로 눈을 돌리니, 그곳엔 패션 잡지가 있었다.
......
아, 그런 거였구나...
그냥 옷장 속에 있게 내버려 둬 주세요...
어차피 제가 안 보여도 아무도 모를 거예요...
흐음.
88식 씨, 지금 거기서 끌어낼 거예요.
네?!
잠깐, 그게 무슨 말씀――
영차!
꺄아아아악!
끄응...
M99가 88식을 한 손으로 옷장에서 끌어냈다.
자아! 자세히 볼 수 있게 똑바로 서세요!
으으...
으으으...
그럴 줄 알았어요. 엄청 예쁘잖아요! 색감도 정말 잘 어울리고요!
응? 이건... 주머니인가요?
아, 아시겠어요?
이 히든 포켓은 무서운 물건을 걸 수도 있어요! 총을 통째로 매달아도 옷이 전혀 늘어나지 않죠!
그리고 이것 보세요, 바로 밑에는 온도 조절 패널까지 있답니다!
옷감 사이에 전자 부품을 자연스럽게 숨길 방법을 찾느라 한참을 연구했다니까요!
오... 흠흠... 그렇군요. 네, 어떤 구조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이렇게 만들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저는 열정 가득한 디자인이야말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88식 씨가 그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패션 잡지에는 이런 옷이 안 나와서죠?
유행한다는 건 모두가 좋아하는 기준이란 뜻이잖아요?
그리고 그 기준을 벗어나는 건 수준 미달이란 거고...
유행이란 그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해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준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걸 찾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답니다.
하지만 저만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통용될지는...
물론 저마다 취향이 다르긴 하죠. 하지만 당신이 좋아한다 해서 꼭 다른 사람에겐 별로인 건 아니에요.
지금 88식 씨의 옷이 좋은 예시예요! 그런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는 건, 그중 어떤 요소가 88식 씨의 마음을 움직였단 뜻이잖아요.
88식 씨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분명 다른 누군가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하, 하지만...
그게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하죠...
그거야 시도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죠.
88식 씨는 여기서 처음으로 설을 보내는 거니까, 나가 보면 분명 깜짝 놀랄걸요?
까, 깜짝 놀라요!?
대체 뭐가 있길래요?! 너무 놀래키진 말아 주세요...
아, 그런 뜻이 아니라!
어... 그러니까... 95식이나 97식, DSR-50 씨를 보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예요.
잡지로 패션을 배우는 것도 괜찮지만, 좋아하는 걸 당당하게 내세울 줄도 알아야 해요.
당당하게 내세웠더니... 정말로 틀렸다면요?
미적 감각에는 옳고 그름이 없어요. 자신이 무엇을 진심으로 좋아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거죠.
88식 씨는 아직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이렇게 넓은 세상에서 분명 88식 씨와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으으...
알았어요... 고마워요, 대장님...
그건 그렇고, 88식 씨의 옷이 수제작이라는 게 알려지면 다들 몰려들어서 자기 옷도 개조해달라고 할까 봐 걱정이네요.
그런 상황은 대처하기 힘드니, 만약 정 피하고 싶다면...
아뇨, 단순히 개조를 부탁받는 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해줬으면 하는지만 말해주면 되니까요.
아, 오히려 그편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알면, 지금 유행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겠네요!
새로운 한 해에, 잡지에서 배운 걸 활용하는 것도 괜찮은 출발이려나요?
물론이죠!
그럼 이제 준비 다 됐나요? 어서 가요!
네, 지금...
퍼펑! 퍼퍼펑!
밖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명절에는 흔한 일이지만, 적어도 88식에게는 아니었다.
꺄아아아아!
ART556이 또...
어휴, 명절이니 그러려니 해야지 별수 없겠네요.
......?
어라? 88식 씨, 어딨어요?
여... 역시 바깥은 무서워요...
역시 그냥 방 안에서 있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