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방지 키트
Type88
......
[인어 수색 작전, 시작 72시간 전.]
침착하자, 88식...
아직 72시간이나 남았으니까 문제없어.
겨우 긴급 구명 키드 하나 개발하는 거잖아. 식은 죽 먹기라고...
......발상만 제대로 떠오른다면.
...2시간 전.
이상이 이번 작전 관련 내용이다.
임무에 나가기 전에 서로 파트너의 얼굴을 익히도록.
해산!
후방 구조팀...
나 수영 못 하는데...
안녕, 88식.
내가 세르듀코프야. 잘 부탁해.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너에 대해선 지휘관에게 들었어.
이번 임무는 쉬운 편이니까, 임무 개시 전에 내가 필요한 훈련을 도와줄게.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세르듀코프 씨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건 좋지 않아...
역시, 보조 장비를 준비해야겠어...
[인어 수색 작전, 시작 48시간 전.]
안 되겠어... 벌써 24시간째야...
눈 좀 붙이면서 메모리 정리도 해야...
하지만, 아직 설계도 전혀 못 했는데...
......
조금만 더 참자.
[인어 수색 작전, 시작 36시간 전.]
ZzzZzzz...
결국 88식은 턱을 괸 채 잠들어 버렸다. 턱을 괸 팔은 점점 미끄러졌고, 그리고...
흐악!?
졸아 버렸잖아!
어떡해, 어떡해... 이제 36시간밖에 안 남았어!
이제 시간이 없어!
정신 차려, 88식! 빨리 설계도를 완성해야지!
[인어 수색 작전, 시작 18시간 전.]
휴우...
이제야 좀 윤곽이 잡혔네...
일단 이 초안대로 시험 제작해 보자.
...18시간밖에 안 남아서, 개선이나 테스트를 할 시간은 없겠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만들어야겠다.
[인어 수색 작전, 개시 6시간 전.]
좋았어, 긴급 구명 키트 완성. 장착해 봐야지.
피로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88식은 탁상 위에 엎어진 채로, 자신이 만든 구명 키트를 들고 꼼꼼히 살펴보았다.
응, 연결구 이상 없음...
이리저리 돌려 보다, 손이 미끄러져 키트가 얼굴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야! 아파라...
으으, 고장 나진 않았겠지...?
[인어 수색 작전, 당일.]
88식, 여기에 있니?
출발할 시간이야!
ZzzzZz...
88식...?
88식, 기상!
음냐...?
지휘관님!? 출발하나요?
금방 갈게요...!
......
다들, 여기서 이번 작전에 필요한 장비를 점검하도록.
준비가 끝나면 지정 장소로 이동한 뒤 맡은 임무를 수행하도록 해.
잠시 후 임무의 진전을 확인하겠어.
세르듀코프 씨라면 나 없이 혼자서도 임무를 잘 완수할 수 있겠지...
오히려, 내가 없는 편이 더 나을지도...
한창 준비 중인 세르듀코프를 보면서, 88식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모두와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구석을 찾은 88식은 버려진 골판지 상자 안에 숨었다.
상자 안에 자리를 잡은 88식은 고생해서 만든 긴급 구명 키트를 꺼냈다.
......
과연 잘 작동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써야 할 상황이 있기를 바라야 할지,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야 할지...
88식은 긴급 구명 키트를 몸에 장착했다.
[긴급 구명 키트 장착.]
[시스템 동기화 중...]
[30%... 50%... 75%...]
[99%...]
[......]
[동기화 완료.]
장착 성공!
어쩌면 작동도 문제없을지도!
들뜬 마음에 88식의 눈이 한순간 반짝였지만, 이내 시무룩해졌다.
아니야... 그냥 여기서 가만히 있자...
수영하기 무서워... 바다 무서워...
긴급 구조 임무를 수행해 봤자, 수영도 못 하는 난 이 긴급 구명 키트에 기댈 수밖에 없어...
만약 작동 실패라도 했다간 모두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말 거야...
으으... 웃음거리 되기 싫어...
그래도 모두와 함께 있고 싶은데...
88식, 어디 있니?
지휘관님... 날 찾으러 오신 건가?
아아, 감동이야. 내가 사라진 걸 벌써 눈치채시다니...
그래도, 여기 있는 걸 들키기 싫어...
날 찾아내면 분명 혼내실 걸야...
그런데... 못 찾았다고 그냥 날 버리고 가진 않겠지...?
아, 여기 있었구나.
지, 지휘관님...
왜 상자 속에 숨어 있었어?
저... 세르듀코프 씨의 짐이 되기 싫어서요...
절 데리고 있는 것보다, 혼자서 임무를 수행하는 편이 더 수월할 것 아니에요...
그거, 세르듀코프랑 얘기해 보고서 하는 말이니?
어... 아뇨...
네가 보이질 않는다고 보고한 사람이 바로 세르듀코프야.
지금 널 찾느라 사방팔방을 뛰어다니고 있단다.
널 위해서 특별 훈련까지 준비했다던걸?
......
여기에 있었구나, 88식.
그럼 88식을 부탁한다.
지휘관은 88식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 뒤, 다른 팀의 상황을 살피러 떠났다.
죄, 죄송해요 세르듀코프 씨...
멋대로 사라져서...
괜찮아.
나도 네가 첫 해상 임무를 받아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를 고려하지 않았어.
수영 훈련을 시킬 생각만 했지, 네가 어떤 기분인지 신경 쓰지 않아서 미안해.
아뇨, 세르듀코프 씨는 이미 충분히 신경 써 주셨어요.
고마워요...
있잖아, 사실은 나도 처음 해상 임무를 맡았을 땐 엄청 긴장했어.
하지만 넌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표출할 줄 아니, 따지고 보면 나보다 나은 거야.
그때 난 불안함을 감추려고 억지로 괜찮은 척했거든.
그때, 내 대장은 나한테 짜증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날 믿어 주었어.
대장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그 임무를 망치고 다시는 해상 임무를 맡으려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그때 내가 받은 신뢰를 이번엔 너에게 전해 주고 싶어.
하지만, 전 수영을 전혀 못 하는걸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물에 빠지면 구조하라니...
전 못 해요...
이것 보세요... 긴급 구명 키트도 만들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미완성품이에요...
그런 걸 만들었다는 건, 너도 임무를 잘 완수하고 싶어서 아니야?
그건 좋은 시작이야. 뭐든지 시작부터 완벽할 순 없는 법이라고.
자, 어서 가자. 내가 계획한 해상 구조 특훈을 받으면 어느 정도는 보완할 수 있을 거야!
세르듀코프는 88식의 손을 잡고, 함께 바닷가로 달렸다.
아, 안 돼요...!
......
88식, 눈 떠 봐.
바, 바다에 다 왔나요...?
바람에서 짠맛이 느껴지는데요...
그래, 지금부터 바다를 체험하는 훈련을 할 거야.
자, 한 발 더 내디뎌 봐. 시원한 바닷물이 느껴져?
에엑!?
꺄아아악! 무서워요!
88식은 여전히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세르듀코프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를 비치 볼을 밟아 모래 위에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88식!
괜찮아?!
어푸푸...
이건... 모래의 촉감인가요...?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워요...
맞아.
바다는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부드러운 면도 있어. 네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말이지.
세르듀코프는 다시 88식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88식도 다시 그 손을 잡았다.
모래보다도 부드러운 손이었다.
자아~ 그럼 바다 체험 훈련을 다시 시작해 볼까?
네...
세르듀코프의 손을 잡고서, 88식은 천천히 얕은 물로 발을 내디뎠다.
시원한 물보라가 두 인형의 발에 부드러운 모래를 뿌리며 간지럽혔다.
88식은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가득 찬 얼굴로 세르듀코프를 바라봤고, 두 인형은 이내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
여기서 구조 훈련을 시작하자!
네!
...1시간 후.
기초적인 구조 훈련 내용은 이상이야.
이제 해변을 순찰하면서 모두의 안전을 지키자!
구조 관련 지식을 많이 기억했지만, 그래도 역시...
괜찮아, 순찰하면서 되새기면 돼!
전부는 아니더라도, 하나씩 실천하면서 확실히 하고 싶어요.
후우... 일단 과정부터 다시 확인할게요...
제일 먼저... 어... 준비 운동이었나?
그리고...
얘도 참, 그렇게 많이 긴장했어?
그래도 뭐, 긴장하는 건 정상이야. 그만큼 동료의 안전을 중요시한다는 뜻이니까.
긴장하는 만큼, 잠재적 위험에 더욱 신중하게 대처할 수 있지.
그 말은...
긴장한 상태라면 보이지 않는 문제를 오히려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건가요?
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내 말은, 도저히 긴장이 풀리지 않을 땐 억지로 풀지 않아도 돼.
긴장감을 장애물로 보지 말고, 네 힘으로 삼으란 거지.
긴장감을... 힘으로요?
그래. 예를 들어서, 네가 이번 임무를 맡았을 때 잘하지 못할까 봐 엄청 걱정했잖아?
그 불안함 때문에 긴급 구명 키트를 만든 거고. 그건 좋은 시작이라고 내가 아까 말했잖아.
사실... 긴급 구명 키트라 해봤자, 그냥 튜브를 전개하는 외장 모듈일 뿐이에요...
어떻게 해야 튜브를 손상시키지 않고 부피를 최소화할지 한참을 고민했고...
작동하는 순간 어떻게 해야 튜브를 빨리 전개할지도...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도 전부 아직 시험 단계예요...
그러니까... 시간이 모자랐――
꺄아아아아——
먼바다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세르듀코프 씨, 저 소리 들었어요?
무슨 소리?
저기에서 누가 비명을 지른 것 같은데...
그래? 해수면도 잔잔하기만 한데...
잠깐 기다려 봐, 망원경 가져올게.
세르듀코프는 망원경을 가지러 가방을 둔 곳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88식은 혼자서 멍하니 바다 너머 지평선을 바라봤다.
너무 긴장한 탓에 청각 모듈에 오류라도 생겼나...?
정말 다급한 비명 소리였는데...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이 시간에 물속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사람은 선봉 수색팀밖에 없어.
하지만 루이스 씨는 저쪽에서 낚시를 하고 있으니까, 남은 건 R93 씨뿐인데...
R93 씨의 외모 특징은...
88식은 해수면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마인드맵 기록을 검색했다.
맞아, 저기 물 위에 보이는 분홍색 머리였어.
....잠깐, 저거 R93 씨의 머리잖아?!
어떡하지!?
당장 구하러 가야 하나...?
세르듀코프 씨가... 난 모두의 신뢰를 받고 있다고 했어...
후우......
88식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바람이 멎고, 파도도 조용해지고, 지저귀던 새들도 입을 다물었다.
......
88식은 눈을 부릅뜨고서, 바다를 향해 내달렸다. 바다 따윈 애초부터 두려워한 적 없는 것처럼.
R93 씨!
제가 구해드릴게요!
88식은 전력으로 달려갔다. 바닷냄새 가득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시원한 물보라가 발을 적셨다. 재잘거리는 새들도 마치 응원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갔을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던 88식은 몸이 갑자기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것마저 힘겨워졌다.
그제서야, 88식은 바닷물이 자신의 가슴까지 온 것을 알아차렸다.
당황한 나머지 발까지 헛디디고 말았다.
아앗...
진정해, 88식!
[긴급 구명 키트 전개.]
[시스템 오류 - 튜브 전개 실패.]
어, 어째서...?
이러면 안 되는데...!
[긴급 구명 키트 전개.]
[시스템 오류 - 튜브 전개 실패.]
살려줘요! 켁켁!
저... 어푸... 저 수영 못 해요!
(으으... 여기까지인가...)
(세르듀코프 씨가 열심히 가르쳐 줬는데...)
(그런데도 난 여전히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분명... 엄청 실망하겠지...?)
88식! 조금만 참아!
지금 구해줄게!
(아... 세르듀코프 씨!)
(날 구하러 와줬어...)
세르듀코프 씨!
저... 어푸... 저 여기 있어요!
거의 다 왔어!
(저게 전문 훈련을 받은 모습이구나.)
(날 구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헤엄쳐 오고 있어...)
(어...? 저건 까마귀잖아?)
(왜 까마귀가 세르듀코프 씨의 가방을 물고 있지? 어!? 물건을 떨어뜨리잖아?! 저래서는 마치 공격하는 것 같은데...)
(아, 세르듀코프 씨도 당황하고 있어...)
아앗! 어푸어푸, 이런...!
종아리에... 쥐가... 아니라 고장 났어! 어푸어푸...
(세르듀코프 씨!)
(안 돼...!)
(어떡하면 되더라?)
(세르듀코프 씨가 가르쳐 준 내용...)
(빨리 생각해내, 빨리 떠올리란 말이야, 88식!)
있잖아, 사실은 나도 처음 해상 임무를 맡았을 땐 엄청 긴장했어.
하지만 넌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표출할 줄 아니, 따지고 보면 나보다 나은 거야.
그때 난 불안함을 감추려고 억지로 괜찮은 척했거든.
그때, 내 대장은 나한테 짜증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날 믿어 주었어.
대장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그 임무를 망치고 다시는 해상 임무를 맡으려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그때 내가 받은 신뢰를 이번엔 너에게 전해 주고 싶어.
......
내 말은, 도저히 긴장이 풀리지 않을 때 말이야.
긴장감을 장애물로 보지 말고, 네 힘으로 삼으란 거지.
후우...
우선, 버둥거리지 말고 침착하게 수평을 유지할 것...
그다음, 코를 수면 위로 올리고, 숨은 천천히 뱉고 빠르게 마실 것...
그리고 구조 대상의 등 뒤로 돌아가, 뒤에서부터 팔 아래를 감싸 안을 것...
됐다, 잡았어요 세르듀코프 씨!
이제 다시 코를 물 밖으로 내밀고...
자신의 품에서 얌전히 협조하는 세르듀코프의 신뢰와 안정감을 느끼면서, 88식은 천천히 얕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눈치챈 것이 있었다.
...잠깐만요.
혹시나 한 마음에 쭉 뻗은 다리가 바닥에 닿았다. 여전히 가슴팍까지밖에 오지 않는 깊이였다.
......
......
두 인형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해변으로 걸어 나왔다.
백사장의 푹신하고 바싹 마른 모래를 밟자마자, 두 인형은 동시에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
......
푸흡... 하하하하하!
헤헤헤...
이거야 원...
내 직장 경력 중에서도 손에 꼽을 대형 사고인걸, 하하하...
아뇨, 다 제 탓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날 구해주지 않았으면 우리 둘 다 그대로 수복실행이었는데.
역시, 널 믿길 잘했어.
으으... 고마워요, 세르듀코프 씨.
당신이 아니었으면, 전 아직도 그 상자 속에서 벌벌 떨고 있었을 거예요.
바다에 뛰어드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물론... 물에 들어가자마자...
걱정 마, 아무한테도 안 말할게.
대신 내 다리 고장 난 것도 말하지 마...
저... 근데 우리 뭔가 잊고 있지 않나요?
......?
아 맞다, R93!
빨리 지휘관에게 보고하러 가자!
서로 창피한 모습을 웃음으로 감추면서, 두 인형은 함께 햇볕으로 뜨거운 모래사장 위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