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왈츠
K5
연회가 시작하기 전.
인형 숙소.
점괘를 보며, K5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운세가 엉망이네... 오늘은 그냥 숙소에 남는 편이 나으려나?
하지만 연회도 곧 시작될 텐데... 하아... 지휘관에게 대답하기 전에 미리 점쳐 볼 걸 그랬어.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
헤이 무당 K5! 안에 있지?
지휘관이 헬기 도착했으니까 빨리 오래!
K5는 탁상 위의 점괘를 다시 훑어보고, 서둘러 방 문을 열었다.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어?
MDR의 삐뚤어진 머리 장식을 보며, K5는 미소와 함께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반듯하게 고쳐주었다.
(적어도 "인간관계"는 괜찮게 나왔으니까, 그다지 큰일은... 없겠지?)
30분 후.
연회장.
연회장은 참석한 손님들로 떠들썩했고, 인형들도 각자 연회를 즐겼다.
하지만 K5는 홀로 연회장의 구석에 멍하니 서서, 손에 쥔 샴페인 잔을 빙글빙글 천천히 흔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실수할 일도 없겠지.
일단 운세가 제일 꽝인 구간을 넘긴 다음에... 응?
혼잣말하던 K5는 흔드는 유리 술잔의 술이 이상하게 흘러내리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 술잔 너머로 한 여성이 비쳤다.
저 사람은...?
아, 이 징조는 그 뜻이구나.
K5는 빠른 걸음으로 그 화려한 예복을 입은 손님에게 다가가, 공손히 인사했다.
그리고...
손님, 갑작스럽게 죄송하지만 오늘 밤 당신의 예복을 조심히 다루시기 바라요.
어쩌면 찢어지거나... 모양이 변할 수 있어요.
K5는 계속하려 했지만, 그 손님의 굳은 표정에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 손님은 무례하지 않도록 억지로 미소를 짜내고선 다른 자리로 옮겨 갔다.
K5는 그대로 굳은 채 고민에 빠졌다.
그 치마, 정말로 찢어질 텐데...
그때 연회장이 웅성웅성 시끄러워졌고, K5도 그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지? 재밌어 보이네. 우리 인형들이랑... 모르는 여자애들이랑 시합하는 거야?
좋았어, 그럼 그리폰이 이길지 점쳐 볼까♪
에이, 시합 결과를 점치면 재미없지.
맞아, 결과를 미리 알면 그게 무슨 재미야? 그리고 운세가 나쁘게 나오면 심리전에서도 불리해지잖아.
K5가 막 점을 치려는 순간,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K5는 힘이 죽 빠지는 느낌이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구경하러 모인 사람들 틈을 비집고 빠져나와 테라스로 향했다.
정말이지, 여기에 계속 있다간 나쁜 일만 더 생기겠어.
그리고 "인간관계"도 엉망이잖아!
신기하게도, 벽으로 나누어진 것도 아니건만 테라스는 연회장보다 훨씬 조용했다.
난간에 기대고 턱을 괸 채, K5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감상했다. 하지만 밤바람이 머릿결을 스쳐도 마음은 전혀 시원해지지 않았다.
무도회에 어울리지 않고 여기서 왕자님을 기다리는 중이니?
K5는 갑작스런 목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안도하며 대꾸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지휘관.
나는 K5의 곁에 다가가 난간에 등을 기댔다.
머리를 꼬는 K5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금발은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았다.
모두랑 같이 안 놀아?
모처럼 온 연회잖아.
하아... 모처럼 온 연회인데, 오늘 내 운세가 엉망이라서 그래.
그냥 혼자 있고 싶어, 지휘관. 내 액운이 다른 사람에게 옮으면 안 되잖아.
흐음... 그럼 그 액운, 내가 좀 나눠 받아도 될까?
K5는 뾰로통한 얼굴로 날 째려보았다.
왜, 말해주기 싫어?
오늘 누구한테 폐를 끼치기라도 했니?
...여자 손님 한 분한테 치마가 찢어질 수도 있다고 예언해 줬는데, 그분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화난 듯이 가 버렸어.
그 손님의 심정이 이해가 가네.
그리고 모두가 모여서 카드 게임을 하길래, 그리폰의 승산을 점쳐 보려 했는데...
결과를 미리 알면 무슨 재미냐는 말을 들었지?
과연 지휘관이야.
그저 도움이 되고 싶어서 깊게 생각하지 않은 탓인 걸까?
오늘 밤의 나는... 그냥 재수 없는 녀석으로 느껴져.
도움이 되지 못해서?
K5는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 저 높이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도움이 되지 못한 것뿐이라면 다행이지...
지휘관. 만약 미래의 운세가 나쁘게 나왔는데, 내가 그걸 미리 알려 주면 저주처럼 들릴까?
그게 무슨 헛소리니?
...잘 모르겠어.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닥칠 거라 알려 주는 것 자체가 액운인 걸까?
물론 아니지.
넌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한 수 앞을 내다봤을 뿐이잖니. 넌 잘못 없어.
하지만 다들 나쁜 소식을 들으면 표정이 어두워지는걸...
내가 그런 점괘를 말해 줘서...
잠깐잠깐,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행운이든 불행이든, 네가 그걸 예견해서 결과가 바뀌지는 않잖아?
사람들은 그저 정해진 미래에 실망하는 거야.
응? 지휘관도 운명론자였어?
아니, 난 아니지.
어제 누가 나한테 오늘 감기에 걸려서 연회 내내 고생할 거라 예언했어도 난 안 믿었을걸? 어휴, 정말 모처럼의 연회인데 이게 무슨...
그제서야 지휘관이 걸친 코트가 그리폰의 것이 아님을 눈치채고, K5는 가볍게 웃으며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
그럼 지휘관이랑 조금 떨어져야겠다. 나도 감기에 걸리는 운명은 싫거든.
그 말에 장난이 치고 싶어져, 난 K5의 손을 붙잡아 코트의 주머니에 넣었다.
밝은 달빛이 부드럽게 비추는 K5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표정이 풀어졌다.
어허, 부하라면 힘겨운 미래라도 함께 마주해야지.
K5는 후후 웃었지만, 금세 풀이 죽었다.
가능하다면... 힘겨운 미래 말고, 항상 희망찬 점괘만 나왔으면 좋겠어.
그건 지나친 욕심이지.
하지만 힘겨운 미래를 바라는 사람은 없잖아?
물론 없지.
K5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을 알 순 없었지만, 난 그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난 그런 미래도 받아들일 수 있어.
아무리 피해도 미래는 결국 오기 마련이지. 그렇다면, 차라리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
그건 너무 비관적인걸.
비관적인가? 난 그냥 "반등 효과"를 믿는 거야.
응?
그 힘겨운 미래를 견뎌낸다면, 그 후론 뭐든지 점점 나아진다는 뜻이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넌 평소엔 참 똑똑한데,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면 머리가 안 돌아가는 타입이구나.
내 생각이 엉뚱해?
그래.
내가 어제 야근해서 오늘 감기에 걸리고, 저기 저 녀석들이 쓸데없이 나타나서 이상한 시합을 열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곱게 차려입은 네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그것도 점점 나아지는 일이야?
물론이지.
그런 골치 아픈 일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대화하는 일도 없었을 거야.
그리고 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걸 행운이라고 생각해.
K5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빙그레 웃는 눈동자에는 별들이 비쳐 보였다.
지휘관은 정말 운명론자가 아니구나. 궤변가였어.
하하, 그렇다 치지 뭐.
그런데, 오늘 일이 잘 안 풀린 거 가지고 바로 풀이 죽는 건 평소의 너답지 않은데.
평소의 내가 뭐...
맨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운세 좀 보라면서 지나가던 인형을 붙잡잖아. 안 그래?
나도 나름대로 통찰력이 깊어서 말이지. 네 마인드맵이 네 겉모습처럼 침착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잘 알아.
하, 하지만 저마다 고민을 품고 있을 거 아니야. 난 그걸 좀 도와주고 싶단 말이야...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아는 K5는 어리바리하면서 여기저기 참견하는 녀석이지.
그런데 넌 누구니? 내가 아는 K5랑은 전혀 안 닮았는데?
K5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코트의 주머니 속의 내 손을 꼬집었다.
맨날 사람 놀리기나 하고!
아무튼, 너는 활기찬 모습이 더 보기 좋아.
그리고, 나쁜 운세 보기 싫다고 네 취미를 버리고 성격을 고칠 수 있겠어?
그건...
좋아, 이번엔 내가 점을 쳐 보지.
흠흠... 그렇군. 아주 잘 알겠어. 지금 내 눈앞의 소녀는... 오늘 간식도 얼마 먹지도 못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리기 직전이로구나.
꼬, 꼬르륵이라니! 숙녀한테 매너도 없이 무슨 소리야 지휘관!
하하하, 그래그래.
여기서 잠깐 기다려 봐, 내가 간식 가져다줄게.
K5는 미소로 화답하며, 연회장으로 다시 들어가는 지휘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난간에 기댄 채로, 구름 뒤에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겨우 이 정도 일 가지고 취미를 버릴 순 없지.
운명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내가 그걸 읽고 대책을 세우면 되지 않겠어?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손님의 치마는... 응, 다음부턴 말 거는 방식에 주의하자.
순간 K5는 멈칫하더니, 부드럽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아하... 오늘의 "인간관계" 운세는 정말 괜찮았네♪
...같은 시각.
연회장의 어딘가에서.
K5 녀석, 전에 듣기론 그냥 일기예보 수준이라더니 언제 정말로 미래를 예견할 정도로 신통해진 거야?
다음에 또 일이 생기면 한번 부탁해봐야겠다. 리벨리온 녀석들과 만나지 않을 행사 날짜로 잡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