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바캉스
R93
......
지휘실.
지휘관님, 조사팀 명단 확인했습니다.
이거 정말 엄청난 임무인데요? 인어 목격 제보는 전 세계적으로 따져도 거의 50년 넘게 없었어요.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지휘관님 관할 구역 근처라니 말이에요.
응, 그래서 마침 잘됐다 싶어서 조사하려는 거야.
네? "마침"이라뇨?
작전 회의를 열 테니, 모두를 소집해 줘.
네, 전달하겠습니다.
LUCKY! 내가 조사팀에 선발됐다!!!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날 버리지 않았구나!
소집 인원이 모인 지휘실의 한구석에서, 인형 한 명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헤헤헤... 이런 게 바로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거지...
저... 안녕?
운이 따라주는 이 기회에 도박이나 한판 해볼까나... 지갑에 남은 지폐가 하나, 둘, 셋...
안녕...?
내 말 들리니...?
앗!?
아... 네가 루이스야?
응, 내가 루이스야...
이번 작전에 같은 조로 편성됐어.
내 이번 파트너로구나, 잘 부탁해!
나도 잘 부탁해.
응 응!
정말 예쁜 인형이네. 나 오늘 운 너무 좋은 거 아니야?
(...잠깐만, 내 운이 이렇게 좋을 리가 없는데?)
......
(역시 좀 이상해... 설마 꿈인가?)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마인드맵 업그레이드하다 고장 나는 꿈을 꿨는데...)
R93, 왜 그래?
루이스, 날 한 대만 때려 봐!
...뭐?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얼른!
어... 그럼, 아파도 원망하지 마...?
응! 아, 그래도 너무 세게는 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루이스의 주먹이 R93의 배에 꽂혔고, R93은 그대로 기절했다.
...그리폰 인형 숙소.
결국 들것에 실려 와 침대에 눕혀졌던 R93은, 아직도 얼얼한 배를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으으... 이렇게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닌 것 같네...
미안, 내가 힘 조절을 잘못했어...
루이스의 사과에 R93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왜 꿈이라 생각한 거야? 조사팀으로 선발되는 게 별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그게... 난 전장이 아닌 곳에선 항상 운이 나쁘거든. 그런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일이 술술 풀려서 좀 이상하다 싶었어.
그럼 더욱 걱정할 필요 없잖아? 그러니까, 그... 뭐였더라, 행운 보존의 법칙?
아, 행운 보존의 법칙? 난 그딴 거 안 믿어!
루이스, 헬리안 씨 알지?
그야 당연히 알지. 근데 갑자기 헬리안 씨는 왜?
이건 비밀인데... 잠깐 귀 좀 대 봐.
으음...?
뭐어...!?
헬리안 씨가 맞선에서 퇴짜를 그렇게 많이 맞았다고?!
그렇다니까. 정말 행운 보존의 법칙 같은 게 있다면... 벌써 가정을 꾸리고도 남았겠지.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운과 외모라 하던데 말이지... 운은 좋은 대상을 만나게 해 주고, 외모는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게――
스톱! 거기까지.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계속했다간 위험해질 거 같아.
그래, 수다는 이쯤 하자.
난 작전용 장비로 교체해야 하니까, 이따가 해변에서 보자!
응, 나중에 봐!
...1시간 후, R93은 인어 목격 제보가 들어온 지점에 도착했다.
루이스는 아직인가? 기다려야겠네...
15분이 지나고...
루이스가 너무 늦네... 이대로라면 플랜 B를 꺼내야 할지도...
다시 15분이 지났다.
R93은 수납함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 들어, 힘껏 공중으로 튕겼다.
운명의 여신께 부탁하자. 앞면이 나오면 루이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뒷면이 나오면... 플랜 B, 단독 임무 진행이야!
빠르게 회전하는 동전이 점점 느려지더니...
갑작스런 강풍에 바다로 날아가 버렸다.
......불길한 징조네.
아니야, 어쩌면 이것이 바로 운명의 계시일지도 몰라.
지휘관님의 선택을 받았으니까, 꼭 훌륭한 성과로 보답해야 해!
R93은 수납함을 도로 닫지도 않고 물에 뛰어들어, 푸른 해수면에 반짝이는 물보라를 일으켰다.
R93, 임무 개시!
R93이 얕은 연안을 따라 2시간 가량 탐색한 결과...
...아무것도 안 보여!
그나저나, 정말 인어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지난 세기에 목격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화상 기록이 전혀 없잖아.
그때, R93 곁으로 반짝이는 물건이 하나 떠내려왔다.
R93은 그걸 놓치지 않고 건져 올렸다.
이건...
그리폰의 마크가 찍힌 동전...?
아, 이건 분명 지휘관님이 항상 바라시던 구매토큰일 거야! 가져다 드려야지!
건져 올린 것을 수납함에 넣자마자, 반짝이는 물건이 또 하나 나타났다.
세모난 보라색 메모리칩...? 인형의 기억 파편인가? 이것도 가져가야겠다.
그리고 이번엔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건이 R93의 눈에 들어왔다.
――!!!
세상에, 포장도 뜯지 않은 서약의 증표가 왜 이런 곳에...?!
와... 반짝이는 게 아직도 잔뜩 보이잖아? 아무래도 본격적인 탐색은 지금부터 시작인 모양이네.
얼마 후, 묵직해진 수납함에 한껏 뿌듯해진 R93은 이만 물에서 나오려 했다.
희귀한 물건을 이렇게나 많이 건질 줄이야... 오늘은 정말 운수 좋은 날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아직 인어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으려나?
R93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다, 이내 결심했다.
안 돼,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잖아!
지휘관님의 신뢰에 보답해야 해, 다시 찾아봐야... 응?
이 조그만 부표 같은 건 뭐――꺄아아아악!
멀지 않은 위치에 있던 구조팀이 그 비명을 들었다.
세르듀코프 씨, 저 소리 들었어요?
무슨 소리?
저쪽에서 누가 비명을 지른 거 같은데...
어디... 아, 10시 방향 쪽에서 들려왔네. 이건... R93의 목소리야.
걔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봐. 어서...
88식?! 잠깐! 혼자 뛰쳐나가면 위험해!
(죄송해요, 세르듀코프 씨... 전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요.)
(항상 다른 분들의 도움만 받고... 그러면서 아무도 절 나무라지 않으니...)
(그러니까, 이번엔 제 차례에요...!)
이 긴급 구명 키트로, 모두를 도와줄 거예요!
눈 부신 햇살 아래, 88식의 안경은 여느 때보다 반짝였다.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낸 것 같았다.
오오, 88식이 갑자기 의욕이 충만해졌네?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어.
ADS, 저 또 괜찮은 친구를 사귄 것 같아요.
...2시간 후.
88식, 88식!
콜록콜록...
세르듀코프 씨...
너무 무리해서 좋을 것 없어.
하지만... R93 씨가...
진정해, 지휘관님께 알렸으니까 괜찮을 거야.
지휘관님이 오시면 같이 보고 드리자.
잠시 뒤, 헐레벌떡 달려온 지휘관에게 구조팀은 무거운 마음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이상이, 구조팀의 보고입니다.
죄송해요, 지휘관님... 다 제 탓이에요...
아뇨, 모두를 잘 지켜보지 못한 제 탓입니다.
......
너희 잘못이 아니니까 걱정 마렴. R93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젠장!
왜 느닷없이 통신이 차단된 거야...
(R93이 물에 빠진 뒤 통신이 두절됐다니...)
설마 철혈이라도 나타났나...
"철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88식과 세르듀코프는 동시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니 아니, 그냥 해본 말이니까 그렇게 반응하지 말아 줘... 아무튼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응할 테니까, 너무 걱정할 것 없어.
일단은 해산하렴. 나머진 내가 처리할게.
......
두 인형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지만, 얌전히 지휘관의 명령을 따랐다. 그녀들의 발소리와 뒷모습은 점점 지평선의 노을 속으로 녹아들었다.
지휘관도 자리를 옮기려던 그때, 루이스가 손에 뭔가를 쥐고서 달려왔다.
지휘관! R93은 아니지만 엄청난 걸 찾아냈어!
이것 좀 봐 봐...!
그 "엄청난 것"은 다름 아닌...
이건...
내가 낚아올린 거야. 인어의 상의 같지?
분명 R93은 인어한테 납치당한 거야!
......
무슨 일인지 알겠다.
그리고 지휘관은 홀로 바닷가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루이스가 보고한 대로라면, 대충 이쯤이려나.
지휘관은 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향해 소리쳤다.
R93――! 대답해――!
대답은 없었지만, 예상대로였다.
그리고 대답 대신 어느 바위 뒤에서 사람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역시 내 생각대로였어.
지휘관은 그 바위에 다가가, 루이스에게 받은 것이 든 종이봉투를 내려놓았다.
R93! 네 옷 여기다 둘게!
지휘관이 다시 바다를 향해 외치자...
통신기에서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음...
역시 실종된 것이 아니었구나.
죄송해요, 지휘관님... 함부로 통신 모듈을 꺼 버려서...
괜찮아, 이유는 알고 있으니까.
조난된 게 아니라... 수영복이 낚싯바늘에 걸려서 비명을 지른 거지?
과연 지휘관님이시네요...
으으... 설마 임무 중에 그런 황당한 실수를 저지를 줄은 몰랐어요.
괜찮아, 괜찮아.
너도 엄청 놀랐을 거 아니니.
......
잠시 후.
"인어의 상의"를 입은 R93이 바위 뒤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뒤통수에 손을 얹은 채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송해요, 지휘관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어요.
모처럼 건진 전리품들도 전부 잃어 버리고... 하하하, 오늘은 운수가 영 꽝이네요.
(R93...)
지휘관은 어떻게 해야 R93이 기운을 차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좋았어.)
R93, 나랑 내기하지 않을래?
네?
...무슨 내기요?
여기서 인어가 정말 나타날지 내기하자.
지휘관님... 아직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인어 같은 건 다 헛소문이라고요...
그리고, 설령 정말 있다 해도 저 같은 인형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무슨 소리야,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다 알고 있는데.
중간보고 다 받았어. 네가 예정 시각을 넘겨서도 복귀하지 않은 건 어떡해서든 인어에 관한 단서를 찾으려 한 거잖니.
포기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고 한참을 찾은 거잖아?
......
정말, 지휘관님은 뭐든지 다 아시네요. 네, 인어에 관한 단서를 얻고 싶어서 계속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전 전혀 우수하지 않아요.
제 행운은 전장에서만 쓸모가 있지, 이런 임무에선 지휘관님의 발목만 잡고 말아요.
아니, 그건 아니야.
행운이란 객관적인 개념이 아니야.
내겐 너와 같은 복덩어리와 함께 휴가를 나온 것만으로도 행운인걸.
지, 지휘관님, 그게 무슨...
저 같은 인형이 복덩어리라뇨...
그리고... 휴, 휴가는 또 무슨 말씀이세요?
사실대로 말해 줄게.
요즘 들어 다들 힘든 싸움만 했잖아?
그래서, 모두가 한숨 돌릴 기회가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어.
그런데 때마침 이 근방에서의 인어 조사 의뢰가 들어왔길래, 이렇게 모두를 데리고 온 거란다.
어... 그럼 인어 조사 의뢰는 그냥 핑계였단 건가요?
그래, 인어는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래도 내기를 하려고.
다음번에도 기회가 생기면 모두와 함께 인어 조사를 재개할 셈이야.
지휘관님... 그 말, 진심이세요?
물론이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침울했던 소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좋아요! 이런 질 리 없는 내기를 놓칠 수야 없죠!
지휘관과 R93은 서로를 마주 보며 빙그레 웃은 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귀환하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떤 운명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설령 운명의 여신일지라도, 우리의 주사위를 남의 손에 맡기진 않겠어.)
(내 곁의 행운과 함께, 직접 6을 던져 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