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스커스
MG36
통신 요청 - JS 9.
그 말인즉슨, 예산 확보를 위해 가구 장사를 한다는 뜻이네?
네. 판매원 일을 맡겨도 될까요?
난 후방 관리가 내게 더 어울린다 생각하지만... 맡긴다면 최선을 다할게.
감사합니다, 부탁할게요.
통신 종료.
그럼... 이 좁디좁은 공간에 이 물건들을 배치해야겠구나.
그냥 진열하는 거라면야, 어려울 것 없지.
10분 후.
어, 저기 부스도 열렸다! 아까 그 "라일락" 부스 멋지던데, 저긴 어떨까?
한번 가보자.
그러나저러나, 어떻게 상품 진열도 안 끝난 상태로 문을 열었는지 모르겠네. 저기도 그런 거 아니야?
어서 오세요.
......
원하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어... 왜 식탁이 침대 위에 있죠?
그건 이 함선의 계기판입니다. 유사시 냉동 수면에서 깨어나 곧바로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죠.
엥? 계, 계기판...?
어떻게 읽는데요?
항해 수칙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여기도 엉망이구만. 멀쩡한 가구를 막 바닥에 널브러뜨려 놨어.
이건 또 뭔... 아니, 등롱을 이렇게 바닥에 함부로 버려두면 어떡해?
스마트 휴지통 말씀이십니까?
뭐...? 스마트 휴지통? 이게?
네, 은은한 빛을 발하므로, 깜깜한 밤에도 눈 아플 일 없이 쓰레기통이 어디 있는지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윗부분의 구름 무늬는 손님께서 음식을 낭비하실 때의 부담감을 덜어 주는 역할을 하죠.
뭐야 그게, 누가 종이로 된 휴지통을 쓴다고. 아 근데 말은 그럴싸하네...
종이 재질이라서 교체가 편리하다는 것도 이 스마트 휴지통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필요 없는 것이라면 뭐든지 여기에 버릴 수 있습니다. 맛없는 음식이든, 우울한 기분이든.
그런 다음, 여기를 잡고...
등불 스위치잖아요, 그걸 잡고요?
화르륵.
휴지통의 완전 연소 기능으로 버린 쓰레기를 몽땅 태워 버립니다.
엑... 그럼 만약에 뭘 실수로 버리면 도로 꺼낼 수도 없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러니 버리기 전에 잘 생각해야 합니다.
아 진짜 왜 그럴싸하게 들리냐고... 요즘은 패션 가구가 이렇게 발달했나?
...내가 무슨 소리래, 이거 그냥 등롱이잖아!
스마트 휴지통입니다.
웃기고 있네, 소비자 기만이야 뭐야?
존재하는 모든 물건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실용성은 어쩌고? 쓰레기 비우는 걸 잊으면 바로 터질 거 아니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죠.무엇이든 언젠가는 망가지는 날이 오기 마련입니다.
어...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거 그냥 품질 문제를 얼버무리는 거 아니에요?
가구의 품질은 저희가 보장합니다. 사용법만 준수하신다면――
MG36과 손님들의 기묘한 실랑이에, 점점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정리할 테니 먼저 다른 부스를 방문해 주세요!
에이, 은근 재밌었는데...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흩어졌다.
JS 9? 뭘 그렇게 급하게 뛰어왔어?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안 봤어요?
뚫고 오는 것만으로도 엄청 힘들었다고요.
고생했네. 그래서, 어딜 어떻게 수정하려고?
이 가구들이 대체 어디다 쓰는 물건인지 정말 몰라요?
대신 적절한 용도를 생각해냈어.
그 실랑이인지 뭔지 들었지만... 어...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납득 가는 설명이어서 그런 용도로도 굳이 쓰려면 쓸 수 있겠지만!
물건을 판매할 때는 만들어진 원래 의도를 따라야죠.
하지만 칫솔은 치아보다 다른 걸 더 잘 닦는걸?
그건 예외고요.
봐요, 이 등롱을 휴지통을 쓴다면 얼마나 오래 갈 것 같아요?
얇은 종이라서 망가지기 쉬우니까, 차라리 저 도자기가 훨씬 낫겠지.
아, 그럼 저걸 휴지통으로 쓰면 되겠다.
저건 꽃병이에요...
다른 걸 담으면 안 돼?
너무 작잖아요. 꽃이나 붓처럼 길고 가느다란 걸 꽂을 때 쓰는 거예요.
알았어.
음... 이렇게 놓자.
어때요?
아까보다 훨씬 질서정연해 보여... 일반 가정 같은 느낌이야.
좋았어.
그럼 다른 데도 보러 갈게요. 힘내세요!
잘 가.
......가구는 정해진 용도대로 쓰이도록 만들어진 물건.
그렇다면, 똑같이 용도가 정해진 채로 태어난 나도 가구인 걸까?
서라――!
찍찍!
헉... 헉... 통통한 생쥐! 거기 서!
찌이익!!
흠흠... 10의 제곱근은 3.162277660168379... 10의 자연로그는 0.434294481903252... 아니지, 10을 밑수로, e의 로그는...
찍?
...햄스터?
아래에서 소리가 나 MG36이 고개를 숙여 보니, 웬 커다란 햄스터 한 마리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MG36이 허리를 숙이자, 햄스터는 깜짝 놀라 방향을 틀어 냅다 달렸다.
아, 거긴 막다른 길인데.
...부딪혀서 기절했네.
아, 가게 누나!
안녕, 무슨 일이니?
엄청 큰 생쥐 못 봤어? 이쪽으로 왔는데!
생쥐?
응, 엄청 크고 통통한 녀석!
폭죽을 몇 개 달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실험해보고 싶었는데, 도망쳤어!
아니, 엄청 크고 통통한 생쥐는 본 적 없어.
그런데 왜 그런 실험을 하려 하니?
재밌으니까.
저깄다! 한참을 찾았잖아 이 녀석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렇게 돌아다녀? 엄마 아빠가 걱정하시잖아!
아, 누나!
얼른 가자, 아빠가 빨리 집에 가고 싶대.
에이... 그럼 하는 수 없지. 안녕 누나!
잘 가.
어린 손님들을 보낸 뒤, MG36이 발을 살짝 움직였다. 기절했다 깨어난 햄스터가, 그녀의 신발을 붙잡고 벌벌 떨고 있었다.
걱정 마, 넌 안 통통해...
찌익...
오, 다시 문 열었네?
이봐 아가씨, 그래서 이 등롱 얼마야?
손님이다. 이 과자를 줄 테니까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
찍?
어서 오세요, 그 등롱을 사실 건가요? 그밖에 필요하신 건 있나요?
아깐 이거 보고 스마트 휴지통이라더니?
등롱이든 휴지통이든, 그저 이름에 불과합니다.
이름이 어떻든, 소유자가 그 용도를 정하는 것에 영향은 없습니다.
하하하, 말솜씨는 여전하네. 가구보다 아가씨가 더 흥미로운걸.
죄송하지만, 저는 상품이 아닙니다. 구입을 원하시는 건 이 등롱이 전부인가요?
이거랑, 이걸 뭐랬더라... 아, "계기판".
이 "계기판"은 지금은 무슨 이름이야?
가상 계기판 팔선탁입니다.
가상 계기판이랑 팔선탁은 또 무슨 관계야?
스스로 운명을 좌우할 수 없을 때, 인간은 대신 그 운명을 결정하는 존재를 신이라 일컫죠?
그럼 이 물건이 자신의 운명을 정할 수 없을 때, 우리가 바로 이것의 신이 됩니다.
그럼 왜 하필이면 8인데?
여태까지 방문한 7명의 손님들께서 이것의 가격을 물으셨고, 8번째인 바로 당신이 그 계기판의 주인이 되었으니까요.
하핫, 정말 재밌구만! 그래, 그럼 이 두 개 살게.
감사합니다.
아가씨, 혹시 직장 바꿀 생각은 없어? 가게 점원 노릇만 하기엔 그 입담이 아까운데.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요.
그때가 되면, 제 영화 시사회에 와 주세요.
첫 손님을 보내자마자 다른 손님들이 줄을 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MG36이 맡은 부스의 가구는 거의 다 팔려나갔다.
일이 대강 마무리되자, MG36은 몸을 숙여 그 햄스터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니?
찍!
기운 있어 보여서 다행이다.
거기서 얌전히 있어. 일 끝나면 같이 놀아 줄게.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 여기 아직 문 안 닫았죠?
네,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저 꽃병을 사고 싶은데요.
감사합니다. 더 필요한 물건 있으신가요?
어... 아, 저 종이창도 예쁘네요. 저것도 주세요.
알겠습니다.
더 있으십니까?
아뇨, 그게 다예요. 아참, 제 남동생이 대신 말 좀 전해 달래요.
"누나 엄청 예쁘다!"라고요.
감사합니다.
전시회가 끝난 뒤.
MG36, 너 거기 있니?
그만 집합할 시간이야.
밧줄 속에 광섬유가 있어. 우주복의 무전기도 정상 작동 중이고.
광섬유... 무전기...? 누구랑 대화라도 하는 중인가?
상황을 확인해야겠어.
의심을 풀어 줘, 할.
우리의 예측상 가장 좋은 지점은 리틀 에트나 크레이터 밑바닥의 샘이야. 메마른 지 이미 천 년은 넘었지.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더 들어가지 말고, 만약 지휘관과 연락이 두절될 경우엔 내 지시 없이 움직이지 마.
나와 연락이 끊기면...?
MG36은 지휘 모듈도 없는데? 대체 무슨 일이지?
MG36? 여기서 뭐하니?
지휘관님...?
누구랑 같이 있어?
네, 할 9002세와 함께입니다.
할 구천이세...?
줄여서 할이라 부르셔도 돼요.
이 녀석이에요.
MG36이 손에 든 커다란 햄스터를 보여 주었다.
어... 햄스터 이름이 참 독특하구나.
연기에 재능이 있는 아이예요. 훗날 제가 제작할 영화에 출연해서 함께 활약할 겁니다.
영화를 찍고 싶어?
아직 생각일 뿐이지만요... 인류의 오래된 꿈과, 긴 세월이 지난 후 그 꿈을 재현하는 이야기.
단순히 임무만 수행하는 삶은 등롱과 다름없습니다.
등롱? 네 부스의 간판에 찍혀 있는 거 말이야?
아뇨, 저건 스마트 휴지통입니다.
...응?
지휘관님은 다른 용무가 있으시겠죠?
자세히 설명해 줄 의향이 있다면 듣고 싶은데.
관객에게 스포일러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직 컨셉 구상 단계예요.
아무튼... 많이 기대해 주세요.
찍!
MG36은 이번 전시회에서 무슨 발상을 얻고, 또 어떤 영화를 찍으려는 것일까?
훗날의 관람자로 예약된 지휘관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분명 훌륭한 영화겠지." 지휘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