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습격
PSG1
이른 아침.
그리폰 인형 숙소.
박쥐 장식의 날갯짓 속도, 각 방향에서의 송곳니의 빛 반사도, 망토 옷깃의 각도... 완벽해.
이제 실전만 남았네.
PSG-1가 필승을 다지며 씨익 웃자, 뾰족한 가짜 송곳니가 눈부시게 번뜩였다.
PSG-1 씨, 이번 시합 최우수상, 최신형 스마트 오븐을 부탁할게요!
걱정 붙들어 매, 시작하고 10분이면 끝나니까. 넌 골에서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돼.
맞다, 오늘은 쿠키에 설탕 더 넣어 줘. 흡혈귀도 움직이려면 당분이 충분히 있어야 해.
거울에 비치는 흡혈귀의 모습을 한 번 더 훑어본 뒤, PSG-1은 담력 시합장으로 향했다.
...어두운 창고.
작은 그림자가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왔다.
으으... 내 사탕... 어떻게 모은 건데, MG3한테 다 뺏겼어...
헤헤, 그래도 괜찮지롱! 더 맛있는 게 날 기다리고 있으니까~
오늘은 다들 그 담력 시합에 정신이 팔렸으니까, 모~올래 초콜릿 몇 개 슬쩍해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FNC는 노련한 발걸음으로 선반에 놓인 초콜릿이 담긴 상자를 향해, 탐욕의 마수를 뻗었다...
...어라? 왜 텅 비었지?
갑자기 창고의 전등이 켜지더니, PSG-1이 들이닥쳤다.
FNC! 또 초콜릿 훔치러 왔어?
어젯밤에 비축해둔 거 전부 네가 먹어 치웠다고 했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난 어제 여기 온 적 없어! 생인형 잡지 마!
항변하는 FNC를, PSG-1은 왠지 모르게 착잡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FNC.
최근에, 기지에서 일어난 이상한 사건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니...?
응? 무, 무슨 사건...?
PSG-1은 FNC에게 다가가, 그녀의 귓가에 무어라 소곤거렸다.
무슨 말을 들었을까, 얼굴이 창백해진 FNC가 천천히 아래를 보자, 발밑에는 걸쭉하고 검붉은 액체가 퍼지고 있었다...
후에에에에에엥!!
문을 박차고 도망가는 FNC를 보며, PSG-1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필기장에 무언가 끄적였다.
작은 숲속.
F1은 나무 위에 앉아, 새까만 밤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달은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으음... "하늘에 걸린 둥근 달아..."
그때, PSG-1이 그림자 밖으로 나왔다.
F1, 내가 방금 저쪽에서 엄청난 경치를 봤어!
무성한 나무 사이로 달빛이 새어 나오는데... 마치 나무 위에 빛나는 보물이 숨겨진 것처럼 보이더라.
F1이 눈을 반짝이며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정말!? 어디야? 빨리 가자!
두 인형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두운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져 나온 비명소리에, 새들이 놀라 도망갔다.
꺄아아아아아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숲 밖으로 뛰쳐나가는 F1을 보며, PSG-1은 다시 만족스런 표정으로 필기장에 무언가 끄적였다.
잠시 후, 시합장 근처의 엘리베이터 앞.
G36C는 음료를 가지러 간 G36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베이터의 램프가 켜졌다.
음...? 언니가 벌써 돌아왔나?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안에서 음산한 분위기의 PSG-1이 걸어 나왔다.
안녕 G36C, G36 대신 음료를 주러 왔어.
아, 고마워요. 언니는 어디 갔나요?
PSG-1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G36은 네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알아야 한다고 봐...
PSG-1가 G36C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였다.
그제서야 G36C는 손안의 컵에 담긴 것이 뜨뜻하고 검붉은 액체인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PSG-1의 송곳니를 보더니...
<Size=55>꺄아아아아아 언니이이이이이이이!!!</Size>
계단을 우당탕 뛰어 내려가는 G36C를 보며, PSG-1은 이번에도 만족스런 표정으로 필기장에 무언가 끄적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숙소, 훈련장, 정비실... 각지에서 겁에 질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게시판의 실황 글에서조차, MDR이 PSG-1을 "사상 최고의 호러 인형"이라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PSG-1의 기세도 결국 숲속에서 꺾이고 말았다.
귀신 팀 PSG-1, 아웃! 최종 점수 8점.
PSG-1은 무참한 꼴로 수갑이 채워져 십자가에 묶이고 말았다.
......
MDR의 흡혈귀 글을 믿는 게 아니었어...
그래도 결과엔 승복해야겠지. 나 탈락했으니까 어서 풀어 줘.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래? 모처럼 잡은 사냥감인데 모두에게 자랑해야지 않겠어?
내 전리품으로서 얌전히 구경거리가 되렴♪
M870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음 사냥감을 찾으러 떠났고, 홀로 남겨진 PSG-1은 바둥거리며 이를 갈았다.
그렇게 얼마나 몸부림쳤을까, 저 앞에서 수풀을 헤치고 KSVK가 나타났다.
저 멀리서 운명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군...
어, KSVK? 마침 잘됐다, 나 좀 도와줘...
나를 부른 게 너로구나, PSG-1.
수갑이 채워져서 십자가에 묶인 건가? 흡혈귀에게 참 잘 어울리는 꼴이군.
비웃지 말고 빨리 풀어 주기나 해!
KSVK가 가까이 가서 보니, PSG-1 손목에는 몸부림으로 인한 상처가 한가득했다.
여기에 얼마나 오래 묶여 있었지?
모르겠어... 묶인 뒤로 나온 방송 횟수로 짐작하면, 대충 한 시간...?
그렇게 묶여 있던 동안, 누가 떠오르던가?
......
PSG-1의 머릿속엔 기대로 가득 찬 m45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들 담력 시합에 정신이 팔렸구나... 헤헤헤...
KSVK는 쓴웃음을 짓는 PSG-1을 조용히 지켜봤다.
시합에 참가하지 않은 인형이 하나 있다.
오직 베이커리에만 관심이 있으면서, MDR의 게시글에서 계속해서 너에 대한 정보를 묻고 있더군. 광팬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지.
......
최신 댓글을 보아하니, 그 인형은 지금 골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m45가...?
과연 누가 너처럼 처참한 꼴이 된 흡혈귀를 그리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만, 궁금하면 직접 가 보도록 해라.
KSVK는 수갑을 풀어 준 뒤, 발길을 돌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도 정말 그리폰의 버러지들과 비슷한 점이 있나 보군.
방금 뭐라고 했어?
KSVK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PSG-1이 깨어나 눈을 번쩍 떴다.
PSG-1 씨! 드디어 깨어났군요!
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핼러윈날 꿈을 꾸던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m45는 안도하며 PSG-1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방금 막 수복 캡슐에서 나왔어요. 어젯밤 담력 시합에서, PSG-1 씨가 십자가에 묶인 채로 너무 오랫동안 몸부림치고 소리 지르는 바람에...
결국 일부 기억을 백업하지 못하고 에너지가 바닥나서, 마인드맵의 기록에 혼란이 발생했을 수 있대요.
카리나 씨도 기억이 꼬일지도 모르니까, 어제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편이 좋다고 했어요.
다 M870 그 녀석 때문이야... 아무튼 정리를 해봐야겠네...
꿈속에서... 상으로 오븐을 타서 너한테 주려고, 다른 인형들을 잔뜩 놀래키고 다녔어.
MDR이 날 "사상 최고의 호러 인형"이라고 부를 정도였다니까!
......
그럼, 처음부터 얘기해 주세요.
알았어, 내 활약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들려줄게.
먼저, 창고에 가서 안에 있던 초콜릿을 모조리 숨겼어.
그리고 FNC가 초콜릿을 슬쩍하러 왔을 때, 흡혈귀 모습으로 나타나서 가짜 피로 녀석을 겁줘서 도망가게 만들었지!
네, 확실히 창고에서 흡혈귀 모습으로 나타나서, 바닥에 피를 뿌려 FNC 씨를 놀래키려 했어요.
그리고, FNC 씨를 놀래키긴 했지만...
했지만...?
PSG-1 씨는 바닥에 뿌린 피를 잘못 밟고 미끄러졌어요. 선반까지 넘어뜨려서 FNC 씨가 깔릴 뻔했다니까요...
어......
그,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네. 침착하게 물 한 모금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키세요.
후우... 그다음엔, 숲에 가서 달구경을 하던 F1을 발견했어.
엄청난 경치를 찾았다고 속이고 데려가다가, 도중에 늑대인간의 소리가 들린 것 같다고 했지!
F1 녀석, 얼굴이 보름달처럼 창백해졌다니까! 하하하!
확실히 F1가 숲에서 달구경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이번엔 또 뭐야...
PSG-1는 F1 씨에게 다가가다가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서 나무에 머리를 찧고 말았어요.
엄청 처절하게 울부짖어서, F1 씨가 깜짝 날라 나무에서 떨어질 뻔했고요...
......
됐어! 다음 이야기는 분명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거야!
네, 말해 주세요.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G36C가 혼자 있었어. G36이 음료를 사 온다고 하는 걸 들었거든. 그래서 거기서 G36이 올 때까지 꼼짝도 안 하겠구나 했지!
그래서 G36이 대신 전해 달라 했다면서 속이고 가짜 피 한 컵을 줬어.
그다음, 흡혈귀 이야기로 겁을 줘서 헐레벌떡 계단으로 도망가게 만들었어!
G36C 씨가 당신에게 놀란 건 사실이지만...
으음, 그냥 사소한 건 신경쓰지 말도록 해요. 아무튼 PSG-1 씨가 G36C 씨를 놀래키는 덴 성공했어요!
휴우... 드디어 정확한 기억이 나왔네.
그다음은요? G36C 씨를 놀래키고 어디로 갔나요?
그다음엔 다시 숲으로 갔는데, 역으로 흡혈귀인 척하던 M870한테 당해 버렸어.
결국 십자가에 묶여서...
아, 그건 사실이랑 정확하게 일치하네요!
그런데 왜일까, 하나도 안 기쁘네...
그다음에는요? PSG-1 씨가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억 나는 건 뭐였나요?
으음... 십자가에 한참을 묶여 있었는데, KSVK가 나타나서 날 풀어 줬어. 그리고 몇 마디 하더니 다시 사라졌어.
그리고 내... "꿈"도 거기서 끝났고.
정지된 PSG-1 씨를 데려온 건 KSVK 씨가 맞아요.
그래서, MDR이 게시판에 날 "사상 최고의 호러 인형"이라고 부른 건 진짜야?
어... MDR 씨가 PSG-1 씨에 관한 글을 올리긴 했어요. 그런데...
당신에게 붙인 호칭은... "사상 최고로 불행한 호러 초보"였어요...
말도 안 돼...
잠깐만. 생각해 보니, 어제 있었던 일을 전부 수첩에 적어놨어!
PSG-1는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한 줄씩 읽었다.
......
창고에서, FNC에게 피바다 작전. 약간의 오차 발생...
숲에서, F1에게 늑대인간 작전. 약간의 오차 발생...
엘리베이터 앞에서, G36C에게... 아무튼 성공...
한 줄씩 읽어 내려가던 PSG-1의 손에서 수첩이 스르륵 미끄러 떨어졌다. 단숨에 방전된 느낌이었다.
그럼... 스마트 오븐은... 못 얻은 거야...?
죄송해요, PSG-1 씨...
최종 점수는 8점이었는데, 딱 1점 차로...
......
그렇구나...
사과해야 하는 건 나야... 약속했는데...
괜찮아요.
그래봤자 겨우 오븐인걸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
난 괜찮아, 위로하지 않아도 돼...
몇 번이고 창피한 꼴을 보였을 뿐이니까... 일상생활에서조차 자기 앞가림도 못 하는 인형에겐 당연한 일이야...
위로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고마운걸요!
고맙다니 뭐가? 약속한 오븐도 못 얻었는데...
맛있는 과자는 최신형 오븐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구울 수 있어요!
비결을 가르쳐 드릴까요?
무슨 비결?
m45는 PSG-1의 귓가에 대고 상냥하게 속삭였다.
그건 바로...
과자를 먹을 사람이 지을 미소를 상상하면서, 그 미소를 같이 반죽하는 거예요.
만약 PSG-1 씨의 미소가 없었다면, 이렇게 맛있는 과자는 구울 수 없었을 거예요.
m45가 주머니에서 과자 하나를 꺼내, 시무룩한 PSG-1에게 건넸다.
PSG-1 씨에게서 영감을 얻어 만든 "뱀파이어 쿠키"랑 "블러디 젤리"에요.
그러니까, PSG-1 씨도 이 과자를 생각하면서 미소를 잃지 마세요!
PSG-1은 흡혈귀 모양의 쿠키를 보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m45...
저야말로 고마워요, PSG-1 씨.
참, KSVK한테도 고맙다 해야겠네.
네! 저도 가볼 생각이었어요.
KSVK 씨께 드릴 과자도 준비했어요. 같이 가요.
...10분 후.
KSVK의 방 문 앞.
KSVK, 안에 있어?
고맙다 인사하러 왔는데...
...반응이 없었다.
KSVK 씨, 안 계시나 보네요? 그럼 과자는 문 앞에 두고 가죠.
그때 숙소의 문이 살짝 열리더니, 이상하게 소름 끼치도록 번뜩이는 KSVK의 두 눈이 틈 너머로 보였다.
어서 와라. 내가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 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