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의 약속
Lewis
12월 24일 오전 6시.
올해의 조금 특이한 크리스마스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지휘관은 이른 아침부터 순시에 나섰다.
제일 먼저 구입한 선물 확인이랑 분배 담당들과 브리핑하고, 크리스마스 트리 준비에...
저녁 파티 준비 확인하고...
그리고... 어... 뭐가 더 있었던 거 같은데...
지휘관, 좋은 아침!
아, 루이스. 좋은 아침.
오늘은 엄청 일찍 일어났네? 크리스마스 때문에 일이 그렇게 많은 거야?
그렇긴 하지만, 난 그저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이니 평소 업무에 비하면 쉬운 편이지. 정말로 고생하는 건 너희들이잖아.
그야 잊을 리가 없지. 기억하고말고.
...약속? 내가 루이스랑 약속한 일이 있었나?
뭔가 더 있지 않았나 싶었더니 이거였나...
와아, 기억한다니 다행이다♪ 역시 지휘관은 외모처럼 좋은 사람이라니까!
헤헤, 그럼 난 준비하러 먼저 갈게!
약속 시간에 찾으러 갈 테니까, 그때 봐~
어... 무슨 약속? 기억이 전혀 없는데?
......
역시... 잊어버렸어...?
미, 미안해 루이스, 내가 요즘 머리에 넣고 다니는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인간의 기억력이 인형보다 못하다는 건 너도 알잖니.
무슨 약속이었는지 다시 말해 줄 수 있을까? 반드시 시간을 낼게.
어휴...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면 화내고 싶어도 못 내겠잖아.
괜찮아, 아직 약속이 깨진 건 아니니까.
그럼 먼저 가서 준비할게. 약속 시간에 다시 봐!
루이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끄응... 내가 정말 루이스랑 무슨 약속을 했나 보네.
그런데 왜 도통 기억이 안 나는 거지?
...나중에 카리나한테 건강 검진 일정 좀 알아봐 달라 해야겠다.
그렇게 지휘관은 중얼거리면서, 다시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인형 숙소.
루이스는 방의 거울 앞에서 부지런히 화장을 했다.
음... 눈썹이 미묘하게 다른 거 같네? 오른쪽이 더 굵어 보여.
루이스는 눈살을 약간 찌푸리고, 조심조심 다시 눈썹을 그렸다.
이제 슬슬 눈썹을 마무리하고...
콰직.
잔뜩 긴장한 루이스의 악력을 견디지 못하고 눈썹연필이 부러지고 말았다.
꺄아악! 이거 새로 산 지 얼마 안 된 건데!
으으... 하필이면 지휘관과 약속이 있는 날에 또... 이거 왠지 불길한 징조 같은데...
어, 설마 R93한테서 옮았나?
불안해진 루이스는 허둥대며 별가루 병을 목에 걸었다.
별가루가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기를... 지휘관과의 약속이 잘 되기를...
별가루에 소원을 빈 뒤, 루이스는 코트를 입고 숙소를 나섰다.
지휘관은 순시를 마쳤지만, 여전히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니 진짜 대체 무슨 약속이었지?
지휘관~!
크리스마스에 맞춰 단장한 루이스가 눈앞에 나타났다.
아, 루, 루이스? 크리스마스 복장 정말 예쁘구나.
헤헤헤, 칭찬 고마워 지휘관!
스프링필드한테서 지휘관의 일이 거의 끝났다고 들었어.
그러니, 슬슬 약속을 이행해 주셔야죠♪
어, 그런데...
가자, 지휘관.
내가 미리 제일 좋은 장소를 골라놨어. 지휘관이랑 나, 단둘이서...
그런데 루이스가 고개를 돌릴 때, 언뜻 얼굴이 새빨개 보였다.
어... 그게 어딘데?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지켜줄 테니까 일단 따라와 봐.
루이스는 땋은 머리를 흔들며 성큼성큼 앞서갔다.
지휘관도 그녀의 뒤를 따라, 기지 밖으로 향했다.
기지 안에서가 아닌가?
일단 개조나 소체 업그레이드 약속은 아닌 모양이네...
지휘관... 저번 크리스마스 때 내게 준 선물 기억해?
...뭐였더라?
그날, 예쁘게 꾸민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서 모두와 함께 자기 선물을 찾아 열어볼 땐 정말 즐거웠어.
행사 준비 과정이 무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역시, 모두와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이었어.
루이스가 뒤로 빙글 돌아, 별가루 목걸이를 보여 주었다.
이게 그때 내가 받은 선물이야. 엄청 예쁘지?
이걸 볼 때마다, 그날의 즐거웠던 추억이 떠올라.
그래서 결심했어. 앞으로는, 크리스마스마다 꼭 모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또 추궁받을까 걱정하던 지휘관은 내심 안도하며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렇구나. 그럼 약속한 일이 끝나면 같이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하러 갈까?
응! 그렇다면 더 서둘러야겠네!
들뜬 루이스가 걸음을 재촉했고, 지휘관도 코트를 꽉 붙들고 그녀를 따라갔다.
15분 후.
얼마나 더 가야 해?
거의 다 왔어! 힘들어서 그래?
정 힘들면 내가 지휘관 안고 갈까?
괜찮아 괜찮아! 아직 걸을 수 있어! 어디까지 가려는 건가 궁금해서.
눈이 펑펑 내리는 밤, 지휘관과 루이스는 어느새 기지 인근의 숲의 입구까지 와 있었다.
바로 저 앞이야, 내가 우리 약속을 위해서 찾아낸 곳에 거의 다 왔어.
루이스는 해맑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종종걸음으로 먼저 숲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휘관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 겨울날의 눈 내리는 밤, 숲속에서 소녀와의 약속이라... 낭만적이긴 한데 이거 어째...
지휘관이 흠칫했다.
전개가 딱 "명탐정 로난 - 성야의 살인 사건" 에피소드인데?!
중요한 약속을 잊어버린 것에 분노한 소녀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으로 유인해 총으로...
뜬금없는 망상에 지휘관이 헛웃음을 쳤다.
하하,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요즘 만화책을 너무 많이 봤나...
지휘관은 왔던 길을 뒤돌아봤지만, 눈이 수북이 쌓인 땅에 다른 사람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날 이렇게 외딴곳으로 데려왔으니 분명 단둘이서만 있고 싶단 뜻이겠지?
약속의 내용도 모두에게는 비밀로 하고 싶은 거고...
그때, 어떤 생각이 지휘관의 뇌리를 스쳤다.
눈꽃이 내리는 밤, 고요한 눈밭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으음...?
에이 설마... 설마...?
지휘관, 안 따라오고 뭐 해?
늑장 부리면 파티 준비할 시간도 없어질 거야!
지휘관은 당황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루이스에게 대답하고 발걸음을 뗐다.
루이스가 설마...
나한테 고백이라도 하려는 셈인가?!
아니 그래도 그렇지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분위기였다. 지휘관은 점점 초조해지면서 자신의 걸음걸이가 우스꽝스러워진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이를 어쩐다... 지휘관 교육받을 때는커녕, 행동 지침에도 이런 상황의 대처법은 안 적혀 있는데...
다른 인형들 때문에라도 쉽게 받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딱 잘라 거절하면 루이스가 상처받을 텐데...
생각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지휘관은 루이스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것까지 몰랐다.
푸하핫, 지휘관 왜 그렇게 걸어?
그러는 게 요즘 유행이야?
어... 루이스, 그러니까...
쉬잇, 이제 눈 감아봐.
약속을 이행할 시간이야, 지휘관...
루이스가 살며시 지휘관의 눈을 가리더니, 손을 잡고 어딘가로 데려갔다.
고요한 밤의 눈밭을 걸으니, 발밑에서 뽀드득대는 눈소리만이 들렸다.
그리고 손에서는 루이스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러다 잠시 후 주위가 다시 고요해졌고, 지휘관은 귓가에 긴장으로 고동치는 심장 소리만이 들렸다.
윽... 루이스에게 들리진 않겠지...?
지휘관, 도착했어.
여기가 약속의 장소야...
루이스가 손을 놓자,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아 지휘관, 눈 떠!
지휘관이 조심스레 눈을 떠보니, 우뚝 솟은 삼나무가 있었다.
어때, 엄청 멋지지?
내가 보름 내내 고생해서 찾은 크리스마스 트리야!
어...? 크리스마스 트리?
그게 약속이었어?
응, 해마다 함께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자고 약속했잖아.
하지만 크리스마스 트리가 없으면 어떻게 크리스마스라 할 수 있겠어?
해마다 함께 크리스마스를...
그래서, 그게 해마다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르는 약속이 됐다고?
정답! 지휘관은 이해력도 좋다니까!
생각의 흐름이 뭔가 좀 이상한데...
...뭐, 방금까지 말도 안 되는 망상이나 한 내가 할 소리는 아니려나.
표정이 왜 그래? 혹시 마음에 안 들어?
아, 아니, 아주 멋진 나무야.
모양도 딱 세모난 게...
어, 저거 다람쥐 아니야?
어, 정말 다람쥐다! 잠깐만, 한 마리가 아니네...?
와아, 여기 옹이구멍에 다람쥐가 잔뜩 잠자고 있어!
......
......
방금까지 의욕이 충만하던 루이스가 풀이 죽었다.
조용히 다른 나무로 옮겨 줄까?
......
이 다람쥐들도 오늘을 위해서 잔뜩 준비했을 거 아니야...
먹을 걸 잔뜩 준비해서, 친구들을 불러모아서, 따뜻하게 한데 모여서 같이 음식을 나눠 먹으려고...
내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고 다람쥐들의 크리스마스를 망치고 싶진 않아...
여기에 나무는 잔뜩 있으니까, 천천히 골라 보자.
그 말에 루이스도 다시 기운을 차리고 새로운 트리를 찾아 나섰다.
10분 후.
루이스, 이 나무는 어때?
음... 괜찮아 보이는데?
좋았어, 그럼 운반하게 기지에서 몇 명 불러야――
지휘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루이스가 전기톱을 꺼내 들어 곧장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괜찮아, 나 혼자서 충분해!
흩날리는 톱밥을 보면서, 지휘관은 통신기를 도로 집어넣었다.
잠시 후, 루이스가 전기톱의 시동을 끄자...
삼나무가 쓰러졌다.
지휘관이 잔가지를 정리하는 동안, 루이스는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봤다.
지휘관도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처음 나무에 미련이 남니?
이 숲에서 가장 멋진 나무였으니까. 그게 아니면...
이번 크리스마스는 완벽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트리가 완벽하지 않다고 크리스마스까지 흠이 생기진 않지.
루이스, 네가 생각하는 완벽한 크리스마스란 어떤 모습이야?
으음... 무지무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고, 기지도 아~주 아름답게 장식하고, 선물도 잔뜩 있어야 해!
그런 크리스마스라면 스프링필드 혼자서도 준비할 수 있을걸?
그것도 그렇네... 그럼, 지휘관은 어떤 게 완벽한 크리스마스라 생각해?
나? 난 크리스마스에 맞춰 예쁘게 차려입은 모두가 즐겁게 명절을 보내는 걸 볼 수 있다면야 더 바랄 것도 없어.
와아~ 그건 나도 기대되네!
나도 모두가 어떻게 차려입었는지 빨리 보고 싶어!
지휘관, 서두르자!
루이스는 나무를 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지고 달려갔다.
그리고 그 완벽한 삼나무 밑을 지날 때, 위에서 뭔가가 루이스의 머리에 떨어졌다.
아야!
루이스! 괜찮아?
루이스는 나무를 내려놓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떨어진 고리 같은 것을 주워들었다.
이건... 겨우살이?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 보니, 다람쥐 한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그 모습을 본 지휘관과 루이스는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히히, 얼른 가자 지휘관.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고.
그래, 가자.
참, 겨우살이에 관한 이야기 알아?
지휘관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어... 겨우살이 아래에서 키스하면 행복해진단 이야기 말인가?
심장이 또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 아, 아니, 글쎄? 전혀 모르겠는걸! 아무것도 몰라!
지휘관은 다시 밀려오는 잡념과 망상을 뿌리치기 위해 헐레벌떡 기지로 뛰어갔다.
어라? 지휘관 또 왜 저래?
분명 모성애에 관한 신화였지...?
멀어지는 지휘관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루이스는 흠칫하며 다시 삼나무를 짊어졌다.
아아! 지휘관 같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