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탐험가
QBU88
......
수복실.
여긴... 수복실?
내가 왜 여기에... 아.
맞다, M200이랑 같이 전투 지역을 탐색하다, 기갑 유닛이 튀어나와서...
마인드맵이 다시 빠르게 가동하면서, QBU-88의 머릿속에 복귀 전까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구, 구해 줘 M200!!
큰일이다...!
놀란 M200은 카메라를 던지다시피 놓고 총을 쐈다.
하지만 성급한 공격은 외피에 흠집만 내고 실질적인 피해를 주지 못했다.
안 되겠어, 이건 나 혼자선 감당 못해...
그로자 씨! 여기는 M200, 응답 바랍니다!
3번 전투 지역에서 다수의 폐기 기갑 유닛들과 조우했어요. 일부는 화기 시스템이 살아있는 데다, QBU-88이 사로잡혔어요.
좌표는 지금 전송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와 주세요! 부탁드려요!
크윽... 으아아아악!
안 돼... 녀석이 저렇게 계속 경계 상태면 QBU를 더 세게 쥘 거야...
이, 이 녀석 움직인다...? 야! 너 날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야!? 살려 줘 M200!
다시 관절을 노려서... 젠장, 총알이 바닥났어...!
정말 달리 방도가 없는 걸까...
M200! 눈 감아!
어?
그리고 눈앞이 번쩍한 뒤에 바로 기절한 것 같은데...
새로운 메일이 있습니다.
메일? 임무인가? 어디 어디...
연회용 드레스를 만들어 달라... 흠흠...
엑, 기한이 겨우 이틀?! 지휘관 대체 무슨 생각이야? 아직 내 수복 비용도... 얼레, 이미 결제됐네?
결제인은... M200. 걔가...
생각하고만 있을 겨를이 없어 수복캡슐 밖으로 나온 QBU-88은, 재조립된 어깨 관절을 주무르며 숙소로 돌아갔다.
전장에서 맞닥뜨린 뜻밖의 먹구름이 마음에서 아직 걷히지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막중한 임무가 그녀의 어깨를 다시 짓눌렀다.
M200이 지금 괜한 고민하고 있진 않을까 신경쓰이지만, 할일이 갑자기 너무 많이 생겨서 가서 얼굴 볼 시간도 없겠는걸...
우이씨, 유능하면 고생한다지만 지휘관도 사람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야?
툴툴대면서도 QBU-88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역시나, 그녀의 방 문앞에는 소포가 한가득이었다.
하아... 내가 못 살아.
그래 뭐어, 이런 일을 빨리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다 내가 이 방면의 전문가인 탓이지요~
QBU-88은 낑낑대며 소포들을 방 안으로 옮기곤, 곧바로 재단을 시작했다.
AR팀... M4A1은 리더니까 디자인을 간결하고 시원하게...
SOP2는... 방방 뛰는 애니까 좀 과감하게 가볼까?
RO635는 조신하고 우아하게... AR-15는... 흐음, 왠지 퇴폐미를 첨가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M16A1? 처음 보는 이름인데.
자료를 좀 봐야... 오, 엄청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까만 머리 언니네? 길고 우아한 디자인이 어울리겠다.
다음은 KSVK... 비고가 있네. "마인드맵 업그레이드 후의 소체 수치로 제작 바람"? 그렇게 해 달라면야.
......
............
다... 됐다! 으에에... 36시간 논스톱으로...
으흐흐... 뿌듯하지만 어지러... 이제 좀 쉬어야지...
QBU-88은 충전 케이블을 소체에 연결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답신을 보냈다. 곧 있으면 후방지원부에서 사람이 와 드레스를 가져갈 것이고, 그게 다 배송되기만 하면 된다.
똑똑, 금세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안녕~ QBU-88, 있어?
종합근무팀을 대신해 부탁받은 드레스를 가지러 왔어.
있어, 들어와. 그런데 이거 다 혼자서 옮기려면 구겨질 텐데, 내가 같이 들어다 줄까?
마음은 고맙지만 나 혼자서도 충분해.
오, 이거 내 거야?
응, 프로필에서 네가 그런 디자인을 선호한다길래 반영해서 만들었어.
정말 훌륭해... 네가 이런 드레스도 만들 줄 알았구나.
도안이라도 갖고 있었어?
아하하... 뭐, 그런 셈이지.
근데 사실 좀 급하게 만든 거라서, 지휘관이 구해 온 원단이며 장식품이 좋은 덕분이야.
무슨 소리야, 재료만 좋으면 뭐해? 다 네 재단 실력이 대단해서지.
멋진 무도회엔 멋들어진 드레스가 있어야 더 빛나는 법이라고. M1911 거랑 비슷한 수준의 드레스라도, 기필코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말겠어...
어... 연회가 그런 거 하는 데였나?
아차차, 무심코 본심이...
여, 연회야 물론 느긋하게 즐기는 게 주목적이지만 나한텐 좀 다르거든.
게다가, 같은 연회라도 저마다 참석하는 목적이 다르지 않을까?
음... 역시 나도 도와줄게, 빨리 모두한테 나눠 줘야 너도 춤 연습하지.
...고마워.
그나저나, 그 말을 들으니 궁금해졌어.
연회의 목적 말이야, 연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다들 그냥 먹고 마시고 놀려는 게 아니야?
그거야 기본이고!
연회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을 수도 있고, 친구와의 우정을 더 깊게 다지고 싶을 수도 있지.
자신을 남들한테 과시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걸?
평소엔 여기저기 불려 가서 싸우기만 하니까, 연회에서 싸움이 아닌 특기를 뽐낼 수 있잖아.
우정을 더 깊게...
싸울 땐 우리도 그렇지만 무기의 성능... 그러니까 화력이 중요하잖아?
하지만 이런 연회 같은 데선 총이 아니라 우리가 주인공이니까, 새 친구를 사귀려면 더없이 좋은 기회지.
총을 내려놓고, 인형으로서 타인과 마주하고 스스로가 어떤 인형인지를 보여 주는 거야.
그러니까, 연회의 요지는 먹고 노는 게 아니라, 친구를 사귀거나 하는 일이란 거네?
너도 그럴 생각이라면 연회에서 만나는 걸 기대할게.
그래도, 우린 이미 친구라 할 수 있겠지?
그런 셈이지, 친구 친구.
아, 다 왔다.
수고했어, 나 혼자서였으면 몇 번이고 왔다갔다했을 텐데.
덕분에 춤 연습할 시간이 늘었어!
이 정도 가지고 뭘. 연습 열심히 해.
Zas M76과 헤어지고, QBU-88은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방바닥에 잔뜩 어질러진 자투리 옷감과 포장지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다...? 평소 같으면 연회 같은 거 관심 없는데...
그런데 지금은... 엄청 쓸쓸한 기분이야.
조용한 분위기가 이렇게 무거웠나?
불편해... 이상하게 불편해...
싸울 땐 우리도 그렇지만 무기의 성능... 그러니까 화력이 중요하잖아?
하지만 이런 연회 같은 데선 총이 아니라 우리가 주인공이니까, 새 친구를 사귀려면 더없이 좋은 기회지.
총을 내려놓고, 인형으로서 타인과 마주하고 스스로가 어떤 인형인지를 보여 주는 거야.
여태까진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엄청 외로운 기분이 드네. 자신에게 더 솔직해져야 하나...
연회에 가고 싶지만... 혼자 가기 싫어.
M200한테 같이 가자 할까? 거절하려나? 가겠다 해도 드레스 같은 거 없으니 그냥 간다 하겠지?
후후, 그건 내가 용납 못하지!
잘라낸 넓은 원단을 들고, QBU-88은 육중한 기갑 유닛의 무리를 막아서던 작은 M200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때, 그녀의 제복은 평소처럼 깔끔한 모습이 아닌 격전에 더러워지고 헤졌었다.
데드라인까지, 앞으로... 5시간.
싸우는 이유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곤경에 처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작은 소녀를 떠올리며, QBU-88은 다시 바늘을 들었다.
따르르릉――!
5시간이 지나, 미리 설정해 뒀던 알람이 울렸다.
그에 맞춰 QBU-88도 바늘을 내려놓고, 딱 맞춰 완성한 드레스 두 벌을 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비록 원래 있던 도안을 쓰긴 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쓰고 남은 옷감만으로 드레스를 두 벌이나 만들다니 역시 나야!
드레스를 조심스레 들고서, QBU-88은 M200의 숙소로 달려가는 동시에 통신을 걸었다.
여보세요, M200입니다.
M200! 우리 같이 연회 가자!
아, QB... 어? 연회?
내가 네 드레스 만들었어! 얼른 입어 봐!
뭐? 그, 그치만...
나 지금 문앞이니까 문 열어, 빨리!